고속도로 가족
Highway Family, 2022
이상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도 함께 한 <고속도로 가족>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텐트 생활을 하면서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며 살아가는 4인 가족의 이야기인데, 놀랍게도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영화라고 한다.
- 등급: 15세 관람가
- 장르: 드라마
- 국가: 대한민국
- 러닝타임: 129분
좋게 말하자면 아주 '독특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이 있다. 젊은 아빠, 더 젊은 엄마, 9살 딸, 5살 아들, 그리고 막내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중인 이 가족은 사실은 오갈 데가 없어서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말하자면 제대로 노숙자 가족이었던 것인데...
* 아빠: 장기우(정일우) / 엄마: 안지숙(김슬기) / 딸: 장은이(서이수) / 아들: 장택(박다온)
하지만 또 신기했던 것은 이들 가족이 아무리 보아도 우울하다거나 불행해 보이지가 않았고, 마치 몽골의 유목민인 양 게르 대신 텐트를 짊어지고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돌면서 캠핑이라도 즐기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던 건데...
딸: 아빠, 나 학교 가고 싶어. 글도 배우고 공부하고 싶다.
아빠: 아빠가 다 해 봤는데 별로였어.
딸: 나도 해 본 다음 별로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아빠: 미안하다. 아빠가 못나서 미안해...
그러나 또 깊이 들여다보면, 9살이나 된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해서 아직 글도 배우지도 못한 상태였고, 마냥 철없어 보이던 아빠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들 가족의 생계수단, 그러니까 이들의 사기 수법은 아주 심플했다.
온 가족이 장모님 댁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데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기름 넣을 2만 원만 빌려달라는 것,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반드시 돈을 송금해 줄 테니 계좌번호를 적어 달라고...
일단 아빠 혼자서 나섰다가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 같으면 바로 아이들까지 투입되어 온 가족이 함께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게 포인트였다.
물론 측은지심도 통하지 않아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뜻밖의 마음 약한 사람을 만나면 어렵지 않게 성공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구걸해서 벌게 된 2만 원으로 이들은 휴게소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고, 밤에는 너른 휴게소 한편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으며, 아침이 되면 휴게소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얼추 많은 것들이 해결되는 곳이 바로 휴게소였던 것인데...
그러다가 선글라스를 쓴 그녀(라미란)를 만나게 됐다. 종일 굶었다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2만 원으로는 부족할까 봐 5만 원을 더 챙겨주었던 마음씨 착한 그녀였는데, 또 여기에서 놀라웠던 건 2만 원이면 충분하니 5만 원은 안 주셔도 된다며 진심으로 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 가족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양심은 챙기고 있는 듯 보였던 것인데, 뭐 결국에는 보너스 5만 원까지 총 7만 원을 받기는 했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오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지만 그래도 꼬리가 길면 밟힐 수 있기에 휴게소를 이동해 가면서 주도면밀하게 생활해 왔던 이들인데, 결국 그 꼬리가 밟히고 말았으니... 지난번 마음씨 좋았던 바로 그녀를 또다시 마주치게 되면서 사기 행각이 들통나고 말았던 것.
애초에 돈을 주면서도 갚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녀였지만, 이들 가족의 정체가 사기꾼이었던 걸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 이상 아무리 마음씨 좋은 그녀라고 할지라도 화가 날 수밖에...
게다가 납작 엎드려 사과라도 할 줄 알았던 이 아빠라는 사람이 뻔뻔하게 발뺌을 하고 있으니 참다못한 그녀는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던 건데...
그런데... 마음씨 착한 그녀가 또 한 번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고속도로 가족의 가장이라는 사람이 긴급 구속처리가 되면서 오갈 데 없는 나머지 가족들이 또 눈에 밟혔던 그녀는 남편(백현진)과 함께 운영하는 중고 가구점 한쪽에 딸린 방에서 이들 가족이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던 건데...
사실 이것은 냉정히 보자면 병 주고 약 주는 꼴이 된 셈이긴 하지만, 그래도 남편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임신한 엄마와 어린아이들의 숙식을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것은 큰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우연히 얽히게 된 이 두 가족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고속도로 가족>은 처음에는 세상에 이런 가족이 다 있나 황당하고 신기했다가, 어처구니없었다가, 답답하고 한심했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어쩔 수 없이 안쓰러워졌다가... 이러한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던 영화다.
분명 노숙자 신세였어도 밝고 긍정적으로 보였던 이들 가족이 점점 걷잡을 수 없는 나락의 길로 떨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역시 어린아이들... 특히 큰 딸은 이미 너무나 철이 들어버려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책임해 보이는 젊은 엄마와 아빠에게 화가 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또 마지막에는 이 아빠가 너무나 안 됐어서ㅠㅠ
누군가는 이 영화가 상업적인 영화는 아닌 것 같다고 평했지만, 나는 이 영화가 충분히 상업성 있는 영화라고 봤고,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역 배우들까지 연기를 참 잘해줘도 더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던 '가족'을 위한 영화 <고속도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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