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몰리션
Demolition, 2016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장 마크 발레 감독의 <데몰리션>은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주연으로 꽤 독특한 발상의 영화였다.
아내가 죽었다. 그러나 나는 슬프지 않다. 하지만 돈을 넣었는데도 물건이 나오지 않는 자판기는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자판기회사에 장문의 항의 편지를 쓰기로 한다. 너무나 장황하고도 사적인 내용을 담아...
그래서 뭐가 얼마나 독특한 건데???
- 평점
- 7.4 (2016.07.13 개봉)
- 감독
- 장 마크 발레
- 출연
-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크리스 쿠퍼, 쥬다 루이스, C.J. 윌슨, 폴리 드라퍼, 말라키 클레어리, 데브라 몽크, 헤더 린드, 웨스 스티븐스, 블레어 브룩스, 브렌던 둘링, 제임스 콜비, 알프레도 나르시소, 매디슨 아놀드, 스티븐 바달라멘티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장르: 드라마
- 국가: 미국
- 러닝타임: 100분
부부인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와 줄리아(헤더 린드)가 함께 타고 있던 차량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남편 데이비스는 한순간 아내를 잃게 되었다. 크게 머리를 다쳐 사망에 이르게 된 아내와는 달리 데이비스는 다친데 없이 멀쩡했는데, 정말 이상한 것은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으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을 하고 급기야 병원에 설치된 자판기 회사에 문제의 그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챔피언 자판기 회사 담당자께...
샌안드레아스 병원 중환자실 구역에 있는 714번 자판기에 관해 불만 사항이 있습니다. 25센트 동전 5개를 넣고 B2 버튼을 누른 후 M&M's 땅콩초콜릿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오지 않았죠. 무척 시장하던 터라 화가 났습니다. 게다가 10분 전에 아내가 죽었거든요.'
이렇게 시작된 편지는 딱 불만사항만 적었다면 그래도 납득이 가능했을 테지만 아내의 죽음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아내를 만나게 된 사연에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풀스토리와 함께 장인어른(크리스 쿠퍼) 회사에서 투자 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들까지 줄줄이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첫 번째 편지를 이렇게 끝맺음했다.
'환불 요청과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전부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비스 C. 미첼 드림'
그랬다. 더 큰 문제는 이 편지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밤 데이비스에게로 걸려 온 전화 한 통, 그것은 어쩌면 데이비스의 기이한 행동들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어 보였는데...
캐런: 챔피언 자판기 회사의 캐런 모리노(나오미 왓츠)예요. 고객 서비스 담당자죠.
데이비스: 그런데요?
캐런: 불만 편지 문제로 전화드렸어요. 네 통이나 보내셨지요.
데이브스: 보통 새벽 2시에 전화하나요?
캐런: 아니요. 절대 안 하죠.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데이비스: 누가 읽을 줄은 모르고 넋두리한 건데 미안합니다.
캐런: 편지 읽고 울었어요. 대화 상대는 있나요?
한편, 데이비스의 이상 행동은 날로 심해져만 갔다.
정작 본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아내의 죽음에도 전혀 슬프지 않다고 말했지만 뭔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왔던 해소하지 못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아내의 상실이 그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상처가 되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고장 난 냉장고, 카푸치노 머신, 컴퓨터를 분해하기 시작하더니 회사 화장실 전등과 화장실 칸막이까지 조각조각 분해를 해놓으니 주변에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사실 그것은 장인어른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던 거였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해서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해. 그럼 자네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캐런에게 보내는 편지와 전화통화가 계속 이어지던 어느 날 결국 데이비스는 자판기 회사에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캐런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던 건데...
하지만 캐런은 아들이 있는 엄마였고, 하필 자판기 회사 사장과 사귀는 사이였던...
캐런과 그녀의 아들 크리스(유다 르위스)와의 만남이 시작되면서 물건을 분해하듯 자신의 마음도 조각조각 꺼내놓기 시작한 데이비스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크리스의 친구라도 된 양 마음 가는 대로 춤추고 노래하고 부수는 일들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리하여 캐런과 크리스는 이제 데이비스에게 단순한 대화상대 이상의 의지가 되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인데...
하지만 그에게는 이상한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언젠가부터 차량 한 대가 계속 데이비스를 미행하고 있었던 건데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영화 <데몰리션>은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을 극복하고 치유해 가는 과정을 조금은 독특한 발상으로 그려냈다. 아내가 죽은 이후 전혀 울지 않았던 데이비스가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을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진작에 울었어야 했던 것을...ㅠㅠ
그리하여 제이크 질렌할의 진솔한 연기가 특히 그 눈물연기가 심금을 울렸던 <데몰리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