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戰),란(亂)
Uprising, 2024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심야의 FM>, <걸스카우트>를 연출한 김상만 감독의 <전,란>은 '임금이나 노비나 대동하다'라고 주장하는 대동계의 움직임이 번지고, 임진왜란까지 발발하게 되면서 극도로 혼란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장르: 액션, 전쟁
- 국가: 대한민국
- 러닝타임: 126분
'조선의 사상가 정여립은 천하에 주인은 따로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조직한 대동계에서는 양반과 노비가 함께 무술을 닦고 술과 음식을 나눠 먹었다. 끝내 모반죄로 고발당한 정여립은 관군에 포위되자 목에 칼을 꽂아 자살하였다. 선조 연간의 일이다'
12년 전...
원래는 양인이었으나 빚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양반댁 종으로 팔려가게 되면서 '일천즉천(一賤則賤)'에 따라 아들인 천영 또한 하루아침에 종이 되고 말았다.
* 일천즉천 뜻: 어미, 아비 중 한쪽이라도 노비면 그 자식 역시 노비가 된다는 뜻
그리하여 천영은 태조 대왕 때부터 대대로 무과에 급제한 조선 최고의 무신 집안인 종2품 병조참판(홍서준) 댁에 종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노비의 수많은 소임 중 하필이면 병조참판의 아들 이종려의 몸종이 되어 도련님 대신 회초리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측은지심을 느낄 줄 아는 종려의 착한 성품이었다. 무예에 재능이 부족하던 도련님이 스승과의 검술 대련에서 실수를 할 때마다 대신 회초리를 맞아야 했던 천영이 오히려 뛰어난 눈썰미로 무술에 대한 재능을 보이면서 두 사람은 서로 대련을 함께 하기도 하며 동무처럼 특별한 사이가 되어갔는데...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두 사람의 우정은 여전할 것만 같았으나 상황은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종려(박정민)는 선조(차승원) 임금의 최측근 무관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으나 천영(강동원)은 도노(逃奴) 신세가 되어 추노꾼 광이(최대훈)에게 쫓기고 잡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설상가상으로 임진왜란까지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 도노 뜻: 도망친 종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게 되면서 호위를 맡게 된 종려 또한 가족을 남겨두고 급히 떠나야만 했는데, 나라의 왕이 궁을 버리고 달아난 것에 분노한 백성들은 이참에 다 뒤집어 버리자며 경복궁에 불을 지르는 등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큰 혼란에 휩싸이고 있었다.
한편 군기시(무기 제조 담당 관청) 앞에서는 왜놈들이 코앞에 닥쳤는데 왕까지 줄행랑을 쳤으니, 이제 우리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는데, 마침 근처에 있던 천영이 도성에 남이 있던 군관으로 오해를 받게 되면서 얼떨결에 의병 조직을 꾸리는데 힘을 보태게 된다.
7년 후...
왜란이 끝나고 모두들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간 천영은 김자령(진선규) 장군이 이끄는 의병대에서 활동을 했는데, 함께 했던 의병대원들은 임금님으로부터 상이라도 받을까, 면천이라도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고, 종려는 한양으로 돌아와 폐허가 되어버린 옛 집터를 보고 망연자실했으며, 불타버린 궁으로 돌아온 임금은 그저 경복궁의 화려한 재건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천영과 종려는 결국 적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되는데...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우정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이 도대체 왜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영화는 그 시작에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창작되었습니다'라고 밝혀두었고, 이것이 '창작'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을 해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묻어두자 했는데, 그 전개 또한 역사적 배경은 그저 거들뿐 신분이 다른 두 남자의 우정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로 느껴지기도 했다.
<전,란>에 대해서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에 지루함 없이 볼 수 있었던 영화였고, 특히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했을 것 같은 선조 역 차승원과 고뇌 어린 종려 역 박정민의 연기도 충분히 좋았다.
청불답게 액션에서는 잔인한 장면들이 주를 이루는데, 그럼에도 나에게는 헉 소리 날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장면은 없었고, 대신 보편곤을 휘두르던 의병대 범동 역의 김신록의 활약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는 전(戰)과 란(亂) 뿐만아니라 그 사이 쉼표에 숨겨진 쟁(爭), 반(反)을 더해 전, 쟁, 반, 란 총 4개의 챕터로 구성하였는데, 지루하지는 않았다고 앞서도 언급하기는 했지만, 시대상을 반영하며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던 노력에 비한다면 영화적인 재미는 조금 놓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럼에도 '노비'의 역할에 대해서 너무나 자세히 읊어준 판소리 장면이나 충격적인 궤짝 장면, 그리고 자유로움의 만끽이 느껴지던 마지막 장면에서의 미장센은 좋았다고 생각되는 <전,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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